《묶어놓은 배와 웅덩이 사이의 말처럼》

노지영, 이유경, 조은석

우석갤러리
2025.10.30 - 11.09 


포스터디자인 | 이유경

서문 | 강이슬

사진 | 신유진

후원 | 서울대학교 조형연구소 


 의례(儀禮)는 인류 문명 이전부터 이어져 온 가장 오래된 행위 중 하나이다. 인간 뿐만이 아니라 일부 동물들도 의례적 행동을 보이며, 특히 지능이 높은 동물들의 의례 레퍼토리가 더 풍부하다는 연구 결과는 우리에게 놀라움을 주며 의례를 지 능의 산물처럼 보이게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의례는 문제 해결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 비논리적인 행위이다. 그럼에도 인간이 의례를 계속하 는 이유는, 이 낭비적인 행동이 실은 지성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인류학자 디미트리스 지갈라타스에 따르면 의례는 지적인 유기체가 복잡한 심리로 인해 겪는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신적 도구이다.* 다시 말해 의례를 추동하는 것은 ‘불안’이라는 정서라고 할 수 있다. 무언가에 대한 기원은 사실 그것에 대한 불안의 반증이다. 

《묶어놓은 배와 웅덩이 사이의 말처럼》은 이처럼 지성과 비논리, 기원과 불안이 교차하는 장소인 의례를 전시장 안으로 들여온다. 전시에 참여한 노지영, 이유경, 조은석은 작업을 통해 각자의 의식을 수행하고, 관객은 이들이 그어놓은 경계를 넘나들며 의례의 관람자가 된다. 의례의 밑바닥에 깔려있는 것이 불안이라면, 보다 심연에는 그 불안을 촉발한 사회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거꾸로 말해 본 전시의 의례는 세상을 바라보는 세 작가의 인식이 시각적으로 형상화된 것이다. 불안을 거쳐 의례의 형태로 표출된 세계 는 일상 공간과 구분되는 의례 공간에 위치되어 대상을 새롭게 사유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이렇듯 전시는 이 어딘가 비논리 적이고 기이한 행위들을 통해 다차원적인 감각을 불러일으키고, 그동안 당연하다는 듯이 공고히 존재해 왔던 세계의 시스 템을 재고하도록 이끈다.


 노지영의 영상 작업은 '나는 행복합니다'라는 대중가요의 노랫말을 만트라(mantra)처럼 되풀이한다. 강박적으로 되뇌어 지는 행복은 역설적으로 행복에 대한 불안의 발로이다. 그리고 가사와 더불어 반복 재생되는 연인의 모습은 작가의 불안이 비롯된 사회 제도를 암시한다. 제도란 세상이 규정한 정도(正道)임과 동시에 개인을 구속하는 틀이기도 하다. 이 안정감과 속박감 사이에서 영상 작업 앞에 놓인 한용운 선생의 시구절은 사회가 만들어 낸 체계에 편입되려는 자신의 결정에 대한 작가의 자조적 태도를 대변한다.

 이유경은 전시장 중앙의 온실에서 자신의 몸을 위한 세리머니를 행한다. 작가의 신체 크기로 제작되어 곰팡이를 배양하는 인큐베이터와 신체 일부를 식용 재료로 캐스팅한 조각은 가족에게 영양분을 공급하는 존재로서의 여성상을 떠올리게 한다. 여성으로서 결혼과 출산에 대해 사회적 책임을 느끼는 한편 동시에 그것을 욕망하기도 하는 양가적 감정 속에서 이유경의 신체 ‘덩어리’들은 작가의 분신이 되어 의식을 수행하며 외부 환경에 자신을 내어놓는다.

 조은석은 염소들의 순례 행렬을 통해 거짓말의 메커니즘을 드러낸다. 선두에서 다른 염소들을 이끌고 있는 은빛 염소는 다른 가축을 도살장으로 이끄는 훈련된 염소인 일명 ‘유다의 염소(Judas Goat)’이다. 선지자인 줄 알았던 반짝이는 염소 는 실은 제물을 바치러 가는 배신자 유다였다. 이러한 기만의 행렬을 가능케 하는 것은 염소의 입에서 항문으로 이어지는 구멍이다. 이 구멍은 사실이 누락된 흔적이자 거짓이 흘러가게 하는 통로로, 누락의 틈새에서 태어난 거짓은 또 다른 거짓 을 낳으며 나선 구조를 따라 영원히 이어진다.

 * 디미트리스  지갈라타스,『인간은 의례를 갈망한다: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리추얼의 모든 것』, 김미선 역(민음사,2024) 


- 강이슬